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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1-31 (일) 16:15
   
“ τιμή티메 진리의 로마서 2 ”
                             τιμή티메 진리의 로마서 2

                                                                                              (τιμή) 티메신학연구원  제공 010-5688-9199
                                        
                                            로마서 2. 롬1:1
 
                                          사울에서 바울로  


세상 사람들은 성공지상주의 권력과 절대 부를 추구합니다. 성공과 부의 힘으로 군림할 수 있는 자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신앙을 부패하게 만드는 악의 근원입니다. 좀 더 높은 위치를 깃들려 하는 자들에게 「화있을 진저」라고「하박국2:9」했습니다. 자신의 출세 야욕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는 자들을 피력하는 말입니다. 이제 무한 경쟁시대에 높은데 깃들기 위하여 원칙과 기본을 무시하고 브레이크 파열된 열차가 내리막길을 굴러가는 것 갔습니다. 최고가 되려는 열심이 복음의 본질이 왜곡하여 세상의 야욕이 진리의 복음으로 둔갑하여 설파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힘을 강조하고 크고 많은 것을 소유해야 정의를 실현 할 수 있다는 역설을 여과 없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크고 힘 있는 자를 가리켜 네피림이고 용사이고 유명한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정진되어 이스마일, 에서로 묘사하여 교훈합니다. 그리고 바벨탑을 쌓은 자들이 건설한 제국이 바벨론 입니다. 언제나 이들은 진리 반대편에 서서 힘의 가치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구약에 멈추지 않고 신약에 독버섯처럼 자라난 서기관과 바리세인이었습니다. 심지어 12둘 제자가운데 돈의 가치를 중하게 여겼던 유다도 세상 힘의 원리에 속한자로 포함됩니다.

사도 바울도 세속의 출세를 위하여 율법을 지켜 높은데 깃들이기 위하여 열심을 다해 공적을 쌓으려 했던 자였습니다. 예수를 믿던 자들을 구속시키고 율법으로 흠이 없고 당대 최고학부의 출신으로 성공가도를 내 달리던 자였습니다.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빌3:-6
그러한 사울이 로마서 서두에 바울(헬라어로 작은 자)이라고 소개합니다. 다메섹 선상에서 예수께서 사울아! 사울아! 라고 불렀습니다.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한 핍박이 예수를 핍박한 것이었습니다. 아마 사울(바울) 이름을 작명할 때  베냐민지파 출신 중에 가장 성공한 사람이 사울 왕이었습니다. 베냐민 가문 바울(사울)도 권력과 부의 상징인 사울 왕을 모델로 왕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한 이름이 사울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녀가 덕망 있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여 사울을 모델로 지어진 이름입니다. 사울은 이름에 걸 맞는 왕이 되기 위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 했습니다. 그러한 사울이 예수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즐거워하게 됩니다. 즉 복음 안에서 작은 자로 인지되어 집니다.      
사울로 불리다가 바보 섬에서 바울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게 됩니다. 그렇게 불리는 원인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바울」은 헬라어로 작은 자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울(바울)은 율법주의자의 총아라고 하는 유대주의자 이었습니다. 바울의 이름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후 수년이 지나 후  불러졌습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은혜와 긍휼로 믿음이 밀고 들어옴으로 자기를 깨닫게 된 자의 고백이 바울(작은 자)이었습니다.

1. 작은 자


 바울은 유대교를 도에 지나치게 장로의 유전까지 지키었다. 율법을 잘 지킴으로 흠 없는 자 이었습니다. 자신이 높은 자리에 깃들려 했던 성공주의자 이었습니다. 그러한 바울로 불리면서 자신의 허물과 부끄러움을 적나하게 드러냅니다.“나는 사도도 아니야  팔삭 동이 지극히 작은 자이고 사도의 직분도 감당하지 못하는 자이다. ”믿음이 조금 더 성숙한 후에 엡3:8 성도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자이다. 그리고 죄인 중에 괴수임을 고백합니다. 딤전 1:15
바울의 자아의식이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사도는 예수님을 알아 가면 갈수록 작은 자 이며 티끌에 불과 한자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큰 자가 되려고 하는 자들이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큰 자가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면 작은 자로 내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와 피조물의 자리, 하나님 은혜가 없으면 소망이 없는 자리까지 내려오게 되어있습니다. 자신을 큰 자로 착각 하고 있던 자가 작은 자로서의 실체를 올바로 자각하고 수긍하고 인정하는 과정 속에 은혜의 왕 노릇이 실행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하늘아래 좁쌀 벌레에 불과 합니다. 진짜로 커지려면 이 땅을 발등상을 삼고 서서계신 하나님과 연합이 될 때입니다. 하나님과 연합이 되기 위해서 자기의 누더기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자신이 진리에 의하여 비워져야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속에 머물러 있는 세상의 높은 자 사상을 털어내기 위한 환란과 핍박이 도구가 되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큰 자의 개념을 털어버리고 작은 자로의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진짜 큰 자의 길입니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큰 자의 성장을 추구합니다. 큰 자의 흉내를 내는 것은 하나님의 크심을 인정 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는 큰 자의 추구를 박살내고 작은 자로 밀어 내리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만들어진 나라입성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들어나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만 들러 나야 합니다. 피조물은 죽은 흙의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 은혜 없이 살수 없다는 고백이 시작입니다. “하나님을 영원토록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그 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나는 하나님의 생명력 없이는 단 일분도 살아갈 수 없다. 이제 내 의를 벗어버리고 작은 자로 살아가는 것에 불편 하면 안 됩니다.  


2. 작은 자의 삶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작은 자의 삶을 살아갔음에도 바을을 작은 자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투옥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년과 죽음도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맞이하였습니다. 요즈음 교회와 기독교인 바라고 원하는 것과 다른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과 함께 동행 한 삶, 보이는 것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실상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영안의 힘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에 이끌리어 간 사도의 신앙의 삶의 본입니다.    

로마황제의 졸개들과 인본주의 율법주의자들이 바울을 죽이려는 공격의 시도는 파도처럼 갔다가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사명감이 바울의 존재의 의미였습니다. 그러므로 간약한 계교와 무력을 행하던 권력자들이 바울을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은 산중과 같은 광야와 암혈과 토굴에 갇혀 고독의 날들을 보냈습니다. 바울에게 현실은 궁핍과 환란과 학대를 받았고 조롱과 멸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오늘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육의 생존과 부와 명예 권력을 쟁취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더러운 누더기를 벗기려고 하시는데 누더기에 덧칠해 큰 자로 보이게 해달라고 소원하지 않습니까? 스스로 우리자신을 면밀히 검토해서 내안에서 추구하는 것을 바르게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설명한 히11장 서두에 믿음에 대하여 말하고 말미에 믿음의 사람에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 믿음의 삶을 사악하고 강퍅한 세상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지들은 믿음에 온전하게 장악이 되어서 육이 죽어지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가리켜 믿음의 선진, 선조이었고 신앙의 선배였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믿음 때문에 세상에 핍박을 받고 고통과 고난 속에 세상에 맞아 죽은 순교자 들입니다. 순교는 맞아 죽는 것이 순교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자들이 순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 드릴 수 없고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진리의 복음에 반기를 들고 자기들의 주장을 열거하던 자들입니다. 믿음의 선진은 별 볼일 없이 초라해 보였을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에 예수님의 초라한 기록의 모습처럼 바라볼 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고 고운 모양도 없은즉 우리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3:2 한마디도 별 볼일 없이 작은 자라고 여기던 자들이 진리의 복음을 전하니 약이 올랐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자기가 입고 있던 육이 죽어야 자기 안에 사시는 예수가 살아나 하늘에 아들이 되는 십자가의 진리로 성취됨을 계시로 알았습니다. 이 믿음의 선진들의 삶 때문에 세상은 그들을 감당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나 바울이나 진정한 그리스도인도 핍박은 아프고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그들이 타격한 육적인 고동이나 감정이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돌로 치고 때리고 톱으로 켜는데 안 아프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에게 성령이 함께 함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아픈 것을 안 아프도록 해주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주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모든 것은 인간의 의지로 견디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마져도 성령의 하나님의 인도로만 가능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로 언약의 성취 결정체인 하나님의 나라가 묵시 속에 완료된 믿음이 각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성령에 이끌림에 반응하는 삶에 궤적을 가지게 됩니다. 성도의 삶을 환난으로 감지가 됩니다. 이것이 흔적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영원 속에 존재 한다는 믿음이 각인 되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세상의 것의 추구에 여념이 없게 됩니다. 영지주의 사상에서 십자가를 설명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도 있었고 오늘에도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간구가 성도의 삶에서 나타나는 환란, 핍박, 곤고, 기근, 적신, 위험, 칼 이것이 성령이 가입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겪으면서 자신의 더러움이 한 꺼풀씩 벗기어 나가 믿음의 온전함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가입되기 전에 자신을 신 삼아 살던 자가 육에 죽음을 조금씩 경험하면서 나를 향하였던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진처럼 순교자 폴리캅 처럼 죽음 앞에 당당하고 작은 자 바울처럼 돌로 맞고 거기서 다시 잃어나는 신앙을 본 받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따라가야 함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선물 받은 자들은 이 땅에서 창조의 삶을 살아가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왕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온전히 장악되어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작은자 사도바울처럼 우리 모두는 작은자 의미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저 자신은 여전히 높은 자리 큰 교회 많은 교인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자신을 숨기지 못합니다. 머지않아 하나님께서 합당한 마음으로 자유롭게 될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의 실체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머물던 자로 하나님의 창조에 기여 할 수 없는 작은 자 더나가 죽은 자의 인식이 우선되어야 함을 아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무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사랑을 깨닫고 무력함과 불가능함을 자각 하며 단식하는 저를 위하여 기도부닥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로마서 이어서 계속 연제 되어집니다. 질문은  ab1004abc@hanmail.net. 010-5688-9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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