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 제도 촉구 결의 요구에 채택이 지연됐다. WCC중앙위원회는 회의 시간이 길어지자,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승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11월 7일 WCC 총회대의원(총대)들은 "분열, 전쟁, 고통은 충만한 생명을 바라는 하나님의 뜻과 모순된다"며, 한반도의 영구적이고 지속 가능한 평화 추구를 요청하는 성명서를 최종 승인했다.

성명서는 북한 인권을 위한 경제제재 해제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비 축소 등의 내용을 담았다. 또한 8월 15일 직전 일요일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 주일'로 지정하는 등 남북한 사람들과 교회들이 협력하자고 제안한다.

성명서 채택 안건이 회부된 것은 11월 6일이었다. WCC 산하 기관인 공공쟁점처리위원회(처리위원회)는 종교 소수자의 권리, 무국적자의 인권, 중동 지역 기독교인 등에 대한 13개의 성명서와 회의록을 전체 회의에 상정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는 3번째로 다뤘다. 일부 총대가 병역 거부 양심수와 용어 문제를 제기하면서 성명서 채택 과정은 난항을 겪었다.

6일 열린 전체 회의에서 메노나이트 소속 페르난도 목사(Fernando Enns·독일)는 성명서에 '양심적 병역 거부 제도 마련 촉구'를 추가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병역 거부 양심수 석방 촉구'도 결의하자고 제안했다.

성명서 초안을 작성한 처리위원회는 난색을 표했다. 한국 사회에서 양심수 문제는 논란이 있다며, 쟁점 이해 없이 촉구 결의는 힘들다고 했다. 페르난도 목사를 비롯한 일부 총대의 요청은 계속됐다. 성명서 가결이 어려워지자, 처리위원회는 WCC 한국 대표들과 논의한 후, 7일 전체 회의에서 개정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용어 논란도 있었다. 한 총대는 성명서 내용 중 "이 지역에 있는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한반도에서의 모든 군사훈련 중단, 외국의 개입 중지, 외국 군대의 철수, 군비 축소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창의적인 과정에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는 문장에서 '이해 당사자'라는 단어를 문제 삼았다. 그는 '이해 당사자'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에 유리한 용어라며 '외세(foreign power)'라는 표현으로 수정할 것을 요청했다. 처리위원회는 용어 수정 논의 후, 개정안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 메노나이트 소속 페르난도 목사(Fernando Enns·독일)는 성명서에 '양심적 병역 거부 제도 마련 촉구'를 추가할 것을 요청했다. 페르난도 목사가 속한 메노나이트는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으로 유명한 개신교 종파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하루 동안 총대들의 수정 요구를 검토한 처리위원회는 개정안에 '이해 당사자'를 '외세'로 수정했다. 양심수 관련 문구는 반영하지 않았다. 최초 이 문제를 제기한 페르난도 목사가 7일 회의에서 또 다시 양심수 석방과 제도 장치 마련 촉구가 빠진 것에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WCC가 총대의 의견을 반영할 것"을 재청했다. 3분의 1가량의 총대가 페르난도 목사의 발언을 지지하며 동의한다는 의미의 오렌지 카드를 흔들었다. 크리스티앙 감독(Christian Aisted·감리교연합교회)과 앤 여사(Anne Glynn-Mackoul·그리스정교회) 역시 발언에 나서 페르난도 목사의 주장을 지지했다.

처리위원회는 한국 대표단과 상의한 결과, 병역 거부 양심수 제도 마련과 석방 촉구는 '일치'라는 목표에 위배되기 때문에 배제하기로 결정했다며, 처리해야 할 다른 성명서가 밀려 있으니 채택을 서둘러 달라고 요청했다.

투표에서는 배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블루 카드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WCC중앙위원회는 성명서에 심대한 문제가 없는 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승인해 줄 것을 요청했고, 반대 입장을 보이던 총대들도 마침내 동의했다.

북한 인권과 기독교인 박해 문제는 세부 방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북한의 지속적인 인권 위기를 고려할 때, 우리는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시작하고, 북한과 협력하여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실행할 것을 촉구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 WCC 총대들은 논쟁 끝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를 가결했다. 북한 인권과 기독교인 박해 문제는 세부 방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이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