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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1-20 (일) 17:29
   
“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차이점 ”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차이점



1. 서론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을 한 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할 방법은 없다. 독자들이 이 문제를 간단한 서술을 통해 알려고 한다면 잘못된 계산이다.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보고 경험하는 종교 간의 복잡하고 다양한 갈등들과 문제들만큼이나 쉽게 다루기 어려운 문제이다. 따라서 이 글이 좀 길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읽어야 한다.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람들이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에 대해 말할 때, 근본적인 차이점을 비교분석해 보기도 전에 겉으로 나타나는 사회 문화적인 차이들, 각 종교의 신학적인 주장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 현상들에 국한되어 있다.



우리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점들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인 차이점을 모른 채 다루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주제들은 결코 진위를 분별하는데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근본적인 차이점들에 대해서는 사실상 그리스도인들도, 무슬림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글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근본적인 차이점들에 촛점을 맞추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양측 신학자들의 교리에 대한 설명이나 주장이 아닌 양측 신앙의 핵심이자 근본인 경전을 살펴보는데 중점을 둔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차이점을 가장 근본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가장 타당한 방법은 두 종교의 신앙적 기초가 되고 있는 경전들, 즉 성경과 꾸란을 직접 비교해 보는 방법 외에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 성경과 꾸란의 차이점을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본인들이 직접 이 방법을 사용하여 읽어보고 비교해 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성경의 주제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다.



즉 성경의 전체 내용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 그리고 인간의 삶과 타락과 구원과 영원한 생명 또는 멸망에 관한 것이다. 성경에서는 창조주 하나님 자신의 생각과 계획과 세상 역사에 대한 간섭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온다. 꾸란의 주제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종교로서의 이슬람이 세계의 최고의 종교라는 것이다. 꾸란에서는 이슬람 종교와 마호멭, 그리고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온다. 즉 꾸란의 전체적인 내용은 종교 토론에 관한 것이다.





2. 첫번째 차이점은 경전의 주인공이다.

상식적으로 경전은 신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가 누구인지를 밝히 알려주고, 피조물에 대한 그의 생각과 계획을 알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해 주고,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를 어떻게 해야 올바로 섬길 수 있으며, 그의 뜻이 무엇이며, 그의 뜻과 공의로운 계명들은 무엇이며, 인간을 타락시키고 불행하게 만든 죄는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으며, 또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 우주만물과 인간이 창조된 목적과 마땅히 살아야 할 길과 인간의 삶의 이유와 가치와 목적을 보여 주어야 한다.



성경은 정확히 이것들을 모두 제시해 주고 있다.

먼저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에 관한 내용이다. 즉 하나님이 성경의 주인이다. 하나님에 대한 소개, 하나님의 창조와 역사에 대한 계획에 대한 설명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성경에는 하나님 외에도 무수한 등장 인물들이 나온다. 거기에는 많은 위대한 선지자들의 이야기도 있다. 사도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성경의 정확한 주인공은 하나님 자신이다.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의 종들일 뿐이다. 성경에서 사람들은 영원한 존재도 영원한 주인공도 아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시대에 하나님을 만났으며, 순종하며 섬겼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자신의 계획을 계시하셨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역시 이스라엘 민족 자체도 주인공이 아니다. 그들도 인류의 전체 역사 가운데서 한 동안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수납하며, 계명들과 구원의 약속을 보관하였다가 때가 찼을 때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럼 꾸란의 주인은 누구인가? 당연히 꾸란의 주인은 알라이어야 한다. 알라가 누구인지를 소개해 주고, 우주와 인류에 대한 알라의 계획과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또 어떻게 해야 인간이 공의롭고 선하게 살 수 있는지 그 계명들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꾸란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알라가 아닌 무함맏이다. 꾸란에 나오는 알라는 자신을 절대로 자신을 드러내 계시하지 않는다. 꾸란에 드러난 알라의 인간에 대한 계획은 무서운 것들, 심판, 지옥들이다. 꾸란에서 알라는 무함맏을 옹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무함맏이 처음 아랍인들에게 제시한 이슬람 종교를 지지하기 위해서만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고 있다. 꾸란의 진정한 주인공이 알라인지, 무함맏인지는 독자들이 직접 꾸란을 읽고 확인해 보기 바란다. 이런 수고가 없이 그 진상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있을 수 없다. 독자 여러분들이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이 글을 읽었다고 확인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직접 확인해 보는 방법 밖에는 없다. 물론 꾸란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꾸란을 완독하려면 꽤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참고하기 바란다.



이것은 이슬람교에서 왜 그토록 무함맏을 신성시하며 절대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해답이기도 하다. 무슬림들은 무함맏을 다른 선지자들처럼 동일한 인간으로 보기도 하지만, 사실상 무함맏을 위해 다른 모든 그 이전의 선지자들은 철저히 무시된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알라의 기록이라고 보면서도 꾸란을 위해서는 성경을 철저히 부정한다. 무슬림들은 이슬람과 무함맏이 성경과 선지자들을 완성한다고 말하는 동시에 그 이전의 선지자들과 사도들, 성경과 그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모두 부정된다. 왜냐하면 성경과 꾸란, 성경의 하나님과 꾸란의 알라는 서로 하나일 수 없는 철저한 모순과 대립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모순이 되고 충돌되는 둘 사이에서 분명히 하나는 100% 거짓이다. 물론 그 안에 약간의 진실이 들어있다 하더라도 전체는 용납될 수 없는 거짓일 수 밖에 없다.







3. 두번째 차이점은 역사성이다.

성경의 인물들과 사건들은 모두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해 기록되지 않았다. 성경 기록은 역사적으로 필기도구가 사용되었던 모세 이후부터 다양한 저자들에 의해, 중동 지역과 로마 제국 지역을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에서 기록되었다. 하지만 꾸란은 글을 모르는 마호멭이 암송하는 것을 사람들이 그대로 암송하거나 혹은 낙타 뼈에, 혹은 나무에, 혹은 돌에, 혹은 가죽에, 혹은 야자잎에 기록하였던 것을 세번째 칼리프 때에 대대적으로 편집했던 것이다. 꾸란을 읽어보면 문맥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곳이 아주 많으며, 문법적으로 오류가 많다. 하지만 무슬림들은 꾸란이 알라에 의해서 마호멭에게 하늘에서 내려보내진 것이라는 전설을 꾸며냈다. 지금도 대영박물관과 터어키 이스탄불 박물관에 가장 오래된 서로 다른 꾸란 사본이 존재하며, 이스탄불 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는 것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성경의 내용은 창조주 자신의 성품과 생각과 계획과 일들을 비롯하여 우주와 인류의 시작과 인간의 타락과 저주와 불행과 죽음의 시작,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간섭(섭리), 선지자들을 통한 구체적인 구원방법의 계시와 약속,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취, 종말과 이후의 세계를 총망라하여 역사적인 맥락에서 다루고 있다. 이런 성경의 배열은 주로 이러한 역사성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과 인물들과 지명들도 주로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이다. 성경의 내용을 진리라고 믿고 받아들이는 기준이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이다. '진리'란 영원히 변치 아니하는 참된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꾸란의 기록 방법은 역사적인 사건들과 전혀 관련이 없다. 이슬람의 역사는 기원후 570년경 메카에서 태어난 마호멭이 610년경 첫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이후에 비로소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기원후 610년 이전에는 이슬람이라는 단어도 없었고, 알라, 무슬림 등과 같은 단어 조차도 없었다. 역사가 없다는 것은 기초가 없다는 것과 같으며, 새로운 종교가 시작되기 이전의 역사와의 관련성을 설명해 줄 수 없으며, 창조주와 우주 및 인류 역사의 시작과 진행의 성격을 설명해 줄 수 없다. 이슬람은 처음 창조부터 수천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자신을 선지자로 스스로 주장한 마호멭에 의해 생겨난 종교이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인 공백을 메꿀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공백을 마호멭의 아내 유대인 여자 카티자와 그의 사촌이 제공해 주었다. 카티자의 사촌 바라카 나우팔은 무함맏이 모세오경에 예언된 "그 선지자"라고 말해 주었다.



그 후부터 모하멭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대-기독교인들의 성경에서 찾았고, 자신이 새롭게 만들려고 하는 새로운 종교의 기초와 배경을 마련한 셈이 되었다. 하지만 마호멭이 꾸란을 통해 유대-기독교의 역사적인 기록들 외에 더 추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고, 실제로 꾸란의 내용들을 살펴 보면, 꾸란 이전에 이미 기록이 완성된 성경과 많은 상충과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숙제를 풀기 위해 무슬림들은 이전에 기록되어 있었던 성경이 오염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다양한 곳에서 발견된 수 만 권의 성경 사본들은 하나같이 일치하고 있다. 오히려 이슬람은 자신들에게 없는 과거의 역사를 짜맞추기 위해 여러 가지 전설을 꾸며냈다. 예를 들면, '이슬람은 아담 때부터 있었다", "알라에게는 책의 어머니가 있으며, 꾸란은 알라가 직접 마호멭에게 하늘에서 내려 주었다" 히브리인이었으며 성경에서 모든 민족의 아버지로 불렸던 "아브라함은 (꾸란에서 말하기를) 유대인도 아니었으며, 그리스도인도 아니었다. 그는 참 무슬림이었다" 등등 말도 안되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슬람의 역사성에 대해서 언급한 만큼 이 주제를 좀 더 심층적으로 다루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불교는 신의 계시에 기초를 둔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인간이 인간의 삶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보고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고통스러운 묵상의 과정을 거쳐 인간(싯다르타) 스스로 그 원인과 해결책을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 불교가 인간의 공통적이고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동기로 삼아 자연스럽게 시작한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제공하는 해결책이 궁극적인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마음을 열고 불교를 받아들였다. 불교의 가장 큰 맹점은 창조주 자신에 대한 지식과 창조주 자신의 계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무지하다는 점이다. 또한 인간 자신을 발견하는데 있어서 창조주 안에서 그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지 않고,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 자신과 인간의 깨달음이 기준이 되고 있다. 한편 이슬람교는 마호멭이 그 당시에 이미 여러 민족들 가운데 존재했던 종교들과 자신의 아랍 종교를 비교해 보았을 때, 철저히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저등한 자기 민족의 종교를 볼 수 있었다.



마호멭 당시에 메카의 카바신전에는 이미 오랫 전부터 섬겨오던 360개의 우상들이 있었고, 마호멭 자신도 새로운 종교를 만들기 전에는 그 종교의 일들에 가담하였었다. 마호멭이 꾸란에 기록된 것처럼 "새로운 종교"를 아랍인들에게 초래하고, "알라의 종교는 이슬람이다"라고 선포했을 때, 아랍인들은 우상을 숭배하던 옛 조상들의 종교를 버리고 마호멭의 새로운 종교를 전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이러한 반대는 나중에 대단히 심해져서 마호멭과 그를 따르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게 되었으며, 결국 메디나로 이주(하지라)하게 된다. 메디나에서 여러 지도자들이 마호멭에게 가세하게 되었고, 그 이후 최초의 이슬람의 시발점이었던 메카를 무력으로 점령하게 되었다. 이후의 모든 이슬람의 확장은 무력에 의한 정복에 의한 것이었다.



이슬람의 확장은 불교나 기독교의 확장과는 전혀 다른 무력에 의한 것이며, 오늘날까지 이슬람을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은 강제에 의한 것이다. 물론 꾸란은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그대로이다. 이슬람을 메카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꾸란을 객관적으로 통독한 사람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듯이, 마호멭의 모든 주장이 역사적인 사실이나 진리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였기 때문이었다. 꾸란에 기록된 마호멭의 말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메카 사람들의 주장일 뿐만 아니라, 그와 논쟁을 했던 유대인들, 그리고 기독교인들 모두의 주장이었다.



예를 들자면, 아담이 낙원에서 흙으로 창조되었다가 타락하여 이 세상으로 쫓겨났다는 주장(여기에서는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지만 꾸란에서 이 내용은 20 가지가 넘는 논리적인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과 함께 메카에 와서 카바 신전을 고쳤다는 주장,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에 이스마엘을 제물로 드렸다는 주장,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칼로 죽여 제물로 드리려고 하는데 마귀가 비난하고 조롱하여 이스마엘을 죽이려던 행동을 멈추고 함께 마귀에게 7 개의 조약돌을 던져 쫓아버렸으며,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계속해서 이스마엘을 죽여 제물로 드렸다는 주장, 이슬람이 있기 아주 오래 전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과 같이 이슬람들 거부했던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돌을 비처럼 내려 거역하던 도시들을 폐허로 만들었다는 주장 등 모든 내용들이 역사적인 사건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메카인들, 유대인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거부는 당연한 것이었으나 무함맏은 자신이 새롭게 만든 종교가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종교"라고 주장하였다.



무함맏은 선지자들에 대해 잘 모르는 아랍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성경의 여러 선지자들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였다. 수라 26:40에서 모세와 마술사들 간의 대결도 종교적 대결이었다고 말한다. 모세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만일 마술사들이 승리하게 된다면, 우리가 그들을 따를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마술사가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어쨌든 마술사를 따를 수도 있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 나중에 이들 마술사들은 모세에게 패배하여 알라를 믿고 무슬림들이 되었다. 따라서 모세도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 이집트에 있었다는 것이다. 수라 40:26에서 이집트 왕 바로는 모세를 죽이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가 우상숭배를 옹호하는 자들의 대표, 즉 왕이었고, 무함맏을 두렵게 하고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메카의 우상숭배자들을 예표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모세는 무함맏의 예표가 되는 듯이 이집트인들의 종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집트의 폭군에 의해 반대를 당하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무함맏은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선지자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 종교를 사람들에게 확증시키기 위해 소위 무함맏이 말하는 모세의 종교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함맏이 과거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이용하자 아랍 우상 숭배자들은 선지자의 표적으로 기적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선지자는 자신의 말을 입증할 어떤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라 28:48-49 “이제 언젠가 그들에게 우리의 면전에서 진리의 (선지자가) 와서는 그들이 ‘그에게도 (즉 무함맏에게도) 모세에게도 주어진 기적들이 주어진다면, (우리들이 그를 따랐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들은 전에 모세에게 주어진 기적들에게도 불신자가 되지 않았느냐? 그들은 ‘(타우랕과 꾸란이) 서로 서로를 이용하여 힘 있게 하는 두 마법사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두 책 중) 모두에게 불신자이다’ 라고 말한다.”



무함맏은 성경을 통해 자신이 성경의 하나님이 약속한 선지자라는 것을 확증하고 싶어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함맏 당시의 아랍인들을 비롯하여 모든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한결같았다. 그런데 성경과 꾸란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오늘날 모든 무슬림들은 그 동일한 성경이 꾸란과 무함맏에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은 타락했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의 어떤 부분과 어떤 내용이 타락했으며 변질되었는지, 그리고 누구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시를 하지 못한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기독교 역사에는 이슬람 종교가 무함맏에 의해 생기기 벌써 오래 전부터 수 많은 사본들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수한 사본들은 손으로 베껴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정교하게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 사본들에 대해서는 수 많은 고고학자들에 의해 이미 잘 연구되어지고 있다.





4. 두번째 차이점은 신자의 삶을 지배하는 경전의 내용이다.



이 차이점은 두 책의 기록 방법과 내용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점을 초래하고 있다.

성경은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약 1600년에 걸쳐서 수 많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과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하지만 꾸란은 “알라에 의해 하늘에서 내려보내진 책”이라고 불려진다. 실제에 있어서 꾸란은 무함맏의 암송과 주술에 따라 몇몇 서기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책의 분량은 성경이 훨씬 크고, 저자들도 많고 저자들의 신분과 살았던 시대 및 배경, 그리고 기록되었던 장소도 다양하기 때문에 내용의 일관성이 결여되고 많은 모순이 발견되어야 한다면 당연히 성경이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논리적인 반면, 단 한 사람의 낭독에 의해 기록된 꾸란은 읽으면 읽을수록 비논리적이며 더 많은 모순들이 발견된다.



기독교인들도 성경과 꾸란의 내용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만, 무슬림들은 꾸란과 성경의 내용의 차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 내용이 같을 뿐만 아니라 꾸란이 그것보다 이전에 있던 성경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이것은 사원에서 몰도나 이맘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그렇게 믿는 것이지, 실제로 그들이 꾸란과 성경 전체를 읽어보고 비교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세계의 거의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꾸란을 한 번도 읽지 않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믿고 있다. 이슬람 지역에서 선교를 하는 기독교 선교사들도 꾸란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꾸란에 대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제공된 상식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이슬람을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종교는 무함맏과 꾸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꾸란의 90%를 차지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 주제를 알면 이슬람과 꾸란의 공허함을 알 수 있다. 아래의 내용은 꾸란에서 종교에 대한 마호멭과 그 당시의 메카의 아랍 우상숭배자들, 그리고 무함맏과 유대인 및 그리스도인들과의 종교에 대한 토론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진행되었으며 발전했는지를 꾸란 자체가 스스로 증거해 주고 있는 구절들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무함맏은 자신을 거짓말쟁이와 미친 사람으로 비난하고 거짓 선지자로 취급하며 반대하는 메카인들과 아랍인들, 그리고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만든 새로운 종교를 변명하고, 그들을 저주하기 위해 당시에 발생했던 모든 상황을 꾸란을 통해 알리고 있다(물론 꾸란은 하늘에서 내려진 것도 아니며,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문맹이었던 마호멭 자신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 이후 세번째 칼리프에 의해 모든 자료들이 수집되고 편집되었다).



꾸란은 수라 3:52에서 이슬람을 알라의 종교라고 묘사한다. “이슬람이 알라의 종교이다”. 알라 앞에 있는 종교도 당연히 이슬람이라고 말한다. 수라 48:28 “그는 <알라는> 자기 선지자를 <무함맏을> 지혜와 진리 종교 (이슬람)으로, 그 (종교)를 모든 (종교)들에게 승리자와 위에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보낸 자이다.” 꾸란은 "이슬람이 알라의 종교이다" 라고 말하는데, 과연 절대 신에게 소위 말하는 "종교"가 필요한가?



무함맏이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 첫번째 단계로 그것을 알라의 종교라고 선포하였다. 수라 5:3에서 알라는 “너희 종교로서 이슬람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알라는 무함맏 시대에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이며, 무슬림들을 위해 이슬람을 선택해 준 자인 것이다. 아랍 사회에 고대부터 마호멭 시대까지 있었던 아랍 우상숭배자들의 경우 수라 8:49 “그들의 종교가 그들을 잘못 인도했다.” 다른 종교는 "자기 종교를 게임이나 흥미거리로 취급하고 있다"고 비난한다(수라 6:70; 7:51).



그래서 무함맏은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 아랍인들에게 선포했다. 수라 5:3 “오늘 이제 불신자들인 어떤 사람들이 너희들을 너희 종교로부터 내어보냄으로써) 그들의 소망이 찢어졌다. 됐다. 너희들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나를 두려워하라! 오늘 나는 너희들을 위해 너희 종교를 완전하게 했다. (너희들을 종교가 없는 어두움들로부터 믿음인 빛으로 나오게 함으로써) 나는 너희들에게 선행을 넘치도록 주었다. 그리고 너희들을 위해 이슬람을 종교로 만들어 선택했다. (즉 이슬람과 다른 종교들은 알라의 앞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수라 48:28 알라는 모든 종교 위에 참된 이슬람 종교와 인도로 자기 사도 무함맏을 보낸 자이다.



수라 61:9 “설령 우상 숭배자들이 싫어할지라도 모든 종교 위에 진리의 종교 이슬람과 인도를 선포하기 위하여 알라가 자기 사도를 보냈다.” 무함맏은 과거 종교가 없었을 때, 즉 이슬람이 없었을 때의 상태와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을 때의 상태를 비교하기를 좋아했다. 본문은 알라가 무함맏의 아내들에게 명령하는 말에 해당한다. 수라 33:33 “전에 종교(이슬람)가 없었을 때에 옷을 입었던 것처럼 옷을 입지 마라!” 무함맏은 자기 이전에 있었던 모든 선지자들이 무슬림들이었고, 그들의 종교가 이슬람이었다고 억지를 부리는 반면, 꾸란 여기 저기에서는 그가 당시에 새로운 종교를 시작하였음을 스스로 말해 주는 구절들이 있다.



수라 34:48-49 “말하라! ‘당연히 나의 주가 진리인 꾸란을 (거짓인 무지 위에) 던진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분명히 아는 자이다.’ 말하라! ‘진리인 꾸란이 왔다. (그리고 거짓인 종교없음이 사라졌다. 이제) 거짓이 (새로운 종교없음을) 시작할 수도 없다. (옛날 종교없음을) 뒤돌이킬 수도 없다.’” 수라 36:5-6은 이 점을 대단히 분명하게 선언해 놓았다. “(이 꾸란은) 조상들이 (어떤 선지자를 통해서 종말의 고통을) 경고되지 않은 것에서, 전적으로 무지한 한 종족을 경고하기 위하여 전능하고 자비로운 분 편에서 내려진 것이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계시를 받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수라 53:1-11 “가라앉아 가는 별들에 맹세한다. 너희들의 주인 (즉 무함맏은) 망상에 빠진 것도 아니다. 실족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는 (너희들에게 초래시키고 있는 꾸란을) 자기의 가벼운 바람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그 (꾸란은) 오직 (알라 편에서 선지자에게) 계시되고 있는 (내려지고 있는) 한 계시이다. 그에게 (이 계시를) 한 밤에 충만한, 그의 소유자가 능력 (즉 가브리엘이) 교훈했다. 그렇다. 그는 (먼저) 높은 지평선에 (보여) 반듯이 섰다. 후에 가까이와서 낮추었다. 그렇다. (무함맏에게) 두 활 사이에 또는 (그것보다) 더 가까이 있었다.”



그러자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의 종교에 대해 의심을 품었을 때 다음과 같이 논쟁했다. 무함맏과 무함맏 당시의 아랍 우상숭배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알라에게 자녀들, 즉 아들들과 딸들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한 문제였다. 이것은 꾸란의 거의 대부분의 수라에서 다루어지는 문제이다. 수라 10:104 “오 사람들이여! 만일 너희가 나의 종교에 관하여 의심을 품는다면, 보라! 나는 너희가 알라보다는 다른 것을 숭배하는 것을 숭배하지 않는다. 나는 알라는 숭배한다.



” 수라 42:21 “뭐라고! 그들은 동료들을 가지고 있고, 그 동료들은 알라의 허락도 없이 어떤 종교를 자기들을 위해 세웠다고?” 수라 49:16 “뭐라고! 너희가 너희 종교에 대해 알라에게 가르치겠다는 것이냐? 그러나 알라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아는 자이다. 그는 모든 것들을 충만하게 아는 자이다.” 알라와 알라의 동료들, 즉 알라의 상대자와 딸 신들에 관한 아랍인들과의 바로 이 종교적 논쟁이 나중에 당시의 기독교인들과는 논쟁에서는 마리얌의 아들(이므란의 딸) '예수 그리스도(꾸란식의 표현임)가 알라의 아들일 수 없다', '알라에게는 아들이 있을 수 없다'는 주장으로 발전한다.



꾸란에서 마호멭은 이슬람의 신념 체계를 다음과 같이 세우고 있다. 마호멭은 믿음에 대한 정의를 “복종”이라고 정의하였다. 복종은 이슬람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복종하는 종교가 이슬람이고, 복종하는 자들이 신자들이며, 복종하는 자들이 낙원에 들어간다. 반대로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불신자들이며, 지옥에 들어가는 자들이다. 수라 49:14 “아랍인들이 ‘믿었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오 무함맏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들은 믿은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복종했습니다’ 라고 말하라! (왜냐하면 아직도) 너희가 믿음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만일 너희들이 알라와 그의 선지자에게 복종을 한다면, 그 분이 너희들에게 (행한 선한) 일들 중에서 하나도 적게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꾸란과 이슬람에서 정결함과 부정함은 대단히 중요한 종교적 의미를 준다. 알라에게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기 위해 몸을 정결하게 씻는 절차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심지어 이전의 아랍 우상 숭배자들에게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더 완벽하다는 종교에 정결의식이 없으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라 5:6 '무슬림들이 기도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얼굴과 손을 팔꿈치까지 씻고, 머리를 물로 문지르고, 다리를 무릎까지 씻고, 몸이 의식에 깨끗하지 않다면 목욕하라. 만일 아프거나 여행 중에 있거나 여자를 접촉했거나 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깨끗한 모래나 흙을 취해서 얼굴과 손에 문질러라' 라고 지시한다.



수라 98:1-5에서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책은 꾸란이고, 이슬람 종교가 올바른 길인데, 그 이유는 “그들은 단지 유일한 알라에게, 그 분을 위해 종교를 지키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하고, 나머즈를 완전히 준수할 뿐만 아니라 구제를 준수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알라를 위해 종교를 지키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하고 나머즈를 준수한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슬람 종교는 알라 숭배, 성지순례, 금식, 나머즈 등과 같은 대부분의 아랍의 종교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우상숭배를 타파하고, 추가로 구제, 아랍 방식의 정결의식, 세금, 결혼 및 이혼 절차에 대한 의식, 지하드 등과 같은 종교 규범을 추가시켰다.



무함맏이 이슬람 종교를 만들고 아랍의 우상숭배자들에게 선포했을 때,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아랍인들은 무함맏을 믿지 않았다. 수라 11:26-31절까지 무함맏이 자기 종족 아랍인들을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희들은 유일한 알라에게 예배하라! (만일 유일한 알라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숭배하면), 너희들의 위에 고통스러운 고난의 날이 (올 것을) 나는 두려워한다.’ 그 때 그의 종족 중에 있는 불신자 어떤 사람이 ‘우리들은 너를 우리들과 똑 같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고, 너에게는 단지 우리 안에 있는 낮은 사람 <천한 사람들만> 생각없이 따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라고 말하였다. 그는 ‘오 나의 종족이여, 소식을 주라! 만일 내가 창조주 편에서 온 분명한 문서를 소유한다면, 그리고 그 분이 나에게 자기 왕궁에서 은사-선지자직을 주었다면, 그러나 이것이 너희들에게 은밀하게 되었다면, 우리가 너희들을 너희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믿게 하도록) 강요해야 하느냐? …… 오 나의 종족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이것을 위해 소유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 ”



무함맏이 아랍 우상숭배자들을 설득하려고 이용하였던 것은 주로 성경의 선지자들 이야기였지만, 그가 하는 여러 이야기들 중에는 아랍인들도 아는 여러 전설들이 있었다. 수라 23:83 “이것은 단지 너희들의 이전에 있던 전설들이다.” 무함맏의 근거 없고 꿈을 꾸듯 횡설수설하는 소리들과 말도 되지 않는 전설들을 아랍인들이 믿을리가 없었다(수라 21:3-6). 실제로 꾸란 전체를 읽어보라! 수 많은 전설들과 꾸며낸 이야기들을 쉽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무함맏이 과거의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슬람을 확증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의 말을 들을수록 반대는 커졌고, 무함맏을 거짓말쟁, 마술사, 귀신들린 자 등으로 취급하며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수라 52:29 “됐다. (오 무함맏), 너는 (사람들에게 꾸란 구절들을 가지고) 가르치라! 왜냐하면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점쟁이도, 미친 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은) ‘한 시인이다. 우리들은 그에게 재앙이 미치기를 기다린다’ 라고 한다.”) 수라 23:70 “또는 ‘그에게는 (무함맏에게는) 귀신들린 것이 있다.’ 라고들 하느냐?” 물론 신약 성경을 읽어보면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신적인 능력으로 불치병들을 고치고,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줄 때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통해서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비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쉽게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와 마호멭의 경우는 현저하게 다르다. 왜냐하면 꾸란에는 마법이나 마술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무함맏의 말들이 무수히 많이 발견되며, 자기를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지독한 저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겠다. 수라 73:17 “그렇다. 만일 너희들이 불신자들이 되면, (스스로 공포로) 아이들(의 머리카락들을 희어지게 하여) 노인들로 바꾸어 놓을 날(의 고난)으로부터 어떻게 보호받을 것인가!” 심지어는 무함맏은 자신이 미친 자가 아니라는 것을 맹세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수라 68:2 “연필과 (그와 함께 천사들이) 쓰는 기록들에 맹세하건데, (오 무함맏)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미친 것이 아니다.”



당시 아랍 사람들은 무함맏을 따르는 사람들까지 함께 비난하였다. “너희들은 단지 한 마술에 걸린,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을 따르고 있다” 라고 하였다(수라25:8). 수라 81장은 무함맏이 메카에서 초기에 암송했던 수라로서 왜 메카인들이 그를 미친 시인이라고 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암시를 주고 있다.



수라 81:1-25 “해가 둘둘 말려졌을 때, 별들도 (자기 하늘들에서) 흘러내릴 때, 산들도 (자기 자리들에서 옮겨져) 돌아다닐 때, (뱃 속의 새끼가) 열 달 된 임심한 낙타들도 자유롭게 보내졌을 때, 맹수들도 (한 곳에) 모였을 때, 바다들이 (화덕처럼) 불어졌을 때 (그리고 물 대신에 불로 채워졌을 때), 영혼들이 (다시 육체들에) 짝지워졌을 때, 산채로 매장된 (각각의) 소녀에게 어떤 죄 때문에 죽었는지를 물었을 때, (행위를 기록한 책) 페이지가 열려졌을 때, 하늘이 (땅 위에서) 벗겨졌을 때, 지옥이 (불신자들을 위해) 타올라 흐를 때, 천국이 (경건한 자들에게) 가까워졌을 때, (바로 그 날에 각각의) 영혼이 (바로 그 날을 위해) 준비하여 온 것을 (즉 모든 선악을 행한 것을) 아노라! 충분하다.



나는 (밤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 자, (밤들도) 빨리 지나 (자기 ‘둥지들’, 성벽들에) 숨어있는 자(별)들에게, 자기 어두움으로 오가는 저녁에게, 그리고 밝고 있는 새벽에 맹세를 하노라! 의심할나위 없이 이 (꾸란은) 한 위대하고, 힘있고, 아르쉬의 주인 (되는 알라)의 견해로서 적절한 시간과 장소가 있는, 그곳에서 (즉 하늘에서 천사들 쪽에서) 복종하는 자, 신실한 사도의 (즉 자브러일 천사의 알라 편에서 온) 말씀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주인인 (무함맏은) 미치지 않았다. 참으로 그 (자브러일을) 열려진 지평선에서 보았다.



이 (무함맏은) 출저를 모르는 계시를 탐내는 자도 아니다. (그는 알라 편에서 자기에게 온 계시들을 망치지 않고, 완전한 형태로 너희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이 (꾸란은) 쫓겨난 사탄의 말이 아니다.” 수라 37:6-10 “참으로 우리는 가장 가까운 하늘을 별들로 장식했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종류의 불순종하는 사탄과 귀신들로부터 보호했다. 그 (귀신)들은 가장 높이 존재하는 자들을 (즉 천사들의 말들을) 언제든지 듣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그들에게 모든 방향에서 (별들이) 던져진다. 그들을 위해서 (종말에) 끊없는 고난이 있다. 단지 어떤 때 (어떤 말을) 엿들은 자가 (즉 귀신이) 있다면, 그것도 날으는 별이 쫓아가서 따라잡을 것이다. (그리고 멸망시킬 것이다).” 수라 75:7-10 “그렇다. (본 소름끼치는 것들로부터) 눈을 감고, (하늘에 있는) 달도 잡힌 상태에서 해와 달이 하나가 되었을 때에, 그 날에 그 사람이 ‘(이 재앙들로부터) 어디로 피난할 수 있느냐?’ 라고 할 것이다.” 본문에는 무함맏이 계시를 받을 때 얼마나 공포와 소름을 느끼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구절이다.



당시 아랍 사람들은 무함맏의 꾸란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비난을 하였다. 수라 25:4-5 그 당시의 사람들이 꾸란에 대해 비난한 내용이다. “불신자들 중 어떤 사람들이, ‘(이 꾸란은) 단지 (무함맏) 자신이 스스로 꾸며낸 거짓말이다. 그에게 이 (거짓말을 지어낼 때) 다른 어떤 종족 (특별히 책들의 종족)이 도와주었다’ 라고 모독하고 중상한다. 또 그들은 ‘(이것은) 이전에 있던 전설인데, (무함맏이) 그것들을 다시 고쳐 쓴 것이다. 그렇다. (이 전설들은 어떤 자들 편에서) 그에게 아침과 저녘에 읽혀져 주어진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비난을 들으면서 무함맏을 따르던 자들 중 일부도 무함맏을 거짓말쟁이라고 말하였다. 이럴 때 무함맏은 그들도 독한 말로 욕을 하였다. 수라 33”12-13 “그 때 외선자들과 마음에 상처받은 (즉 확신이 약한) 어떤 자들이 ‘알라와 그의 선지자가 우리들에게 오직 거짓 약속을 하고 있다’ 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많은 반대에 부딪히자 무함맏은 화가 났다. 무함맏은 자기를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자들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며, 보복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으며, 저주하기 사작하였다. 수라 43:22-26 “아니다. 그들은 말했다. ‘당연히 우리들은 조상들을 한 종족-종교 위에 있었고, 당연히 우리들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알라>는 당신<무함맏>보다 전에 어떤 마을과 도시에 어떤 증거자-선지자 보내지 않았다.



단지 그 곳의 나타난 것들이 : ‘당연히 우리 조상들을 한 족속-종교 위에서 찾았고, 당연히 우리들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라고 한다. (선지자가 그들에게) ‘만일 내가 너희들에게 너희 조상들을 찾은 종교에서 올바른 종교를 끌어낸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라고 말할 때, 그들은 : ‘당연히 우리들은 너희들이 사도로 만들어 보낸 종교에 불신자들이다’라고 말했다. 됐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보복을 받았다. 이제 그를 (자기 선지자들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자들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보라! 기억하라. 아브라함이 아버지에게 그리고 종족에게 말했었다.



‘당연히 나는 당신들을 숭배하는 우상들보다 정결하다.” 무함맏은 자기 동족들과 종교적인 문제로 다투게 될 때에도 자기 조상들이 섬겼던 잘못된 우상에서 올바른 종교를 끌어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아브라함에게 두어, 아브라함이 그의 아버지와 동족들이 섬겼던 우상 숭배에서 참 종교를 이끌어 낸 것과 같은 행위을 무함맏 자신이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 구절에서 무함맏은 자신이 조상들의 우상숭배에서 이슬람 종교를 끌어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물론 아랍 우상숭배자들의 비난 중에는 근거 없는 것들도 있었다.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무지막지하게 대한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무함맏은 단지 아랍인들에게서만 반대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반대를 받았다. 무함맏이 당시의 사람들과 함께 했던 것처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축복 대신에, 서로에게 욕지거리와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던 지독한 말다툼은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꾸란은 사람들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아니라 무함맏이 자기의 반대자들에게 무섭게 쏟아부은 저주로 가득찬 책이다.



꾸란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진리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진실을 왜곡한 거짓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채운 책이다. 수라 32:13 “나는 지옥을 (불신자) 귀신과 사람들의 모든 자로 채우는 자이다.” 이러한 소름끼치는 말을 마귀 이외에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과연 사랑의 하나님이 이러한 독한 저주를 퍼붓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런 무서운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겠는가?



메카에서 무함맏의 종교는 거의 발전이 없었다. 도리어 많은 반대와 핍박을 받았고, 심지어는 그를 따르는 소수의 사람들도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수라 18:15, 16 “자 우리 종족은 그분 외에 ‘신들을’ (신)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그 우상들이 신인 것에 대하여) 분명한 한 증서를 가져온다면. (결코 가져올 수 없다.) 그렇다. (어떠한 문서도 없이, 동료가 있다 라고 하여) 알라의 영광에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보다도 난폭한 자가 누가 있느냐? (젊은이들이여!) 너희들은 그들과 알라 외에 그들이 숭배하는 것들로부터 떠나서 거절했기 때문에, 이제 (유일한 너희의 창조주, 알라 자신에게 예배하기 위하여) 동굴에 피난처를 찾아가라! 너희 주가 너희에게 자기 은택을 크고 풍성하게 할 것이고, 너희들의 일들을 번성시킬 것이다.”



이랍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하고 반대하자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지 않는 모든 아랍인들을 정죄하였으며, 점점 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대를 품게 되었다. 수라 6:114 “(오 무함맏, 아랍 우상숭배자들에게 말하라!) ‘나는 알라 외의 다른 것을 맹세하겠는가? 그 자신이 너희들에게 이 책 (꾸란을) 상세한 (즉 너희들이 논쟁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에 충분히 답변을 주는) 상태로 내려준 자이지 않느냐?’ 우리가 책을 준 사람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꾸란이) 너희들의 창조주보다 진리로 내려진 것을 알 것이다.”



수라 11:17 “자 이제 창조주 편에서 온 분명한 증서를 (즉 꾸란을) 소유한 사람이 (단지 이 세상의 유익들만을 찾는 사람들과 똑같겠는가?) 오히려 (알라) 편에서 온 증거 (즉 가브리엘 천사가) 그의 (무함맏의) 동료이고, 그보다 이전에 (즉 분명한 문서인 꾸란보다 이전에) 모세의 책 (타우랕이)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위해 온) 인도자와 (알라의) 호의이었다. 자, 그 자들이 (즉 분명한 증서를 소유한 자들이) 그것을 (꾸란을) 믿게 될 것이다. (선지자에게 대항하여 서는) 집단들 중에서 누구든지 그 꾸란에 불신자가 되면, 그에게 약속된 장소는 지옥이다.” 수라 21:7 “(오 무함맏) 우리는 너보다 전에도 (천사들을 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지 사람들을 (즉 인간들을) 우리 자신이 그들에게 계시를 보낸 상태로 선지자로 삼았다. 그렇다. (오 메카 족속아) 만일 너희들이 모를지라도 (타우랕, 인질을 아는) 족속의 지식있는 자들에게 물어보라!”



수라 21:7은 알라도 무함맏처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할 것을 몰르고 기대를 하였던 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알라가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일도 모르고 무함맏에게 말했던 것이다. 수라 29:46-47에서 무함맏은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라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가르쳤다. “(오 믿는자들이여) 너희들은 친근한 책-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오직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토론하라! 단지 그들 중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들과만 (날카로운 관계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너희들은 말하라! ‘우리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것에도 (꾸란도), 너희들에게 내려진 (타우랕과 인질도) 믿는다.



우리들의 신도, 너희들의 신도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에게만 복종을 한다.’ (오 무함맏, 우리는 너보다 전에 있었던 선지자들에게 책들을 내려 주었다.) 그러므로 너에게도 책, 즉 꾸란을 내려주었다. 그렇다. 우리는 책이 (즉 타우랕과 인질이) 주어진 자들은 그것을 (즉 꾸란을) 믿을 것이다.” 무함맏과 그의 신 알라와 오늘날의 무슬림들은 이 본문에 비추어 보았을 때, 끊임 없이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외선을 행하고 있고, 또한 거짓말을 일삼아 왔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평화를 원하더라도 무슬림들은 결코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대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무함맏은 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옹호할 뿐만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과 책을 읽는 당시의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 모두를 인정하여 주었다. 수라 3:52-54 “이제 언젠가 예수가 그들 (유대인들) 편에서 불신(신성모독)을 보고서, ‘알라의 (종교에 초대할 때) 누가 나에게 협력자가 될 것인가?’ 라고 말했다. 사도들이 ‘우리가 알라의 종교에 협력하는 자들입니다. 알라를 믿었습니다. 오 예수여, 증거하소서, 우리는 알라에게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창조주여, 증거한 것을 믿었습니다. 당신의 선지자를 따랐습니다. 충분합니다. 우리를 증거자들의 반열에 기록하소서!’ 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교묘하게 했다. 알라도 교묘하게 했다. 알라는 더 교묘하게 하는 자이다.



” 수라 10장은 무함맏이 초기에 이스라엘 민족과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극도로 호의적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라 10:93-94 “의심 없이 우리는 이스라엘을 빼어난 최종적인 곳에 장소를 정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정하고 깨끗한 것들에서 양식을 주었다. 후에 그들이 지식 (즉 모세오경)이 주어질 때까지 불일치(모순) 하지 않았다. …… (오 무함맏), 만일 우리가 너에게 밝힌 것들에서 (즉 전에 종족들에 대해 밝힌 우리 구절들에서) 의심하게 된다면, 그럴 경우에 너보다 전에 있었던 책 (즉 모세오경과 신약성경) 읽는 사람들로부터 물어보라! 분명히 너에게 창조주 편에서 진리인 꾸란이 왔다.” 수라 44:29-32 “그렇다. 그들에게 하늘도, 땅도 울지 않았고, 그들에게 기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 참으로 우리는 그들을 아는 상태에서 모든 세상들, 즉 사람들 중에서 선택하였고, 선호하였다.



” 비교적 초기의 메카 수라에 속하는 44장에서 무함맏의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동경심과 감정은 거의 눈물을 쏟을 직전이었다. 수라 45:16도 비슷한 내용이다. “참으로 우리는 이스라엘 (종족)에게 책, 즉 타우랕, 지혜 그리고 선지자직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들을 정하고 깨끗한 것들에서 양식을 주었으며, 또한 그들을 모든 세상보다 높게 했다.”



그래서 무함맏은 유대-기독교인들에게 자기가 만든 새로운 신과 종교가 서로 비슷하니 함께 숭배하자고 제안한다. 수라 3:64-65 “ ‘(오 무함맏) 말하라! ‘오 친근한 책’ (즉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동일한 한 말씀에 일치하여 유일한 알라에게만 예배를 드리자! 그에게 어떤 것도 동료로 만들지 말자! 그리고 알라를 두자! 어떤 것들을 신으로 삼지 말자!’ 만일 그들이 (즉 친근한 책들 그 초대를) 거절하면, 그 때는 너희들이 (오 신자들이여) ‘너희들은 증인이 되라! 우리는 무슬림들이다. 유일한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들이다’ 라고 말하라! ”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먼저 무함맏은 자기가 유대-기독교 전통을 따르는, 즉 구약과 신약 성경에 예언된 대로 와서 그것을 확증하는 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무함맏은 우선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종교, 모세의 종교, 노아의 종교이고, 무함맏은 그들의 종교에 꾸준히 머물러 있는 자라고 주장한다.



수라 12:38, 39 “나는<무함맏은> 나의 조상들의 길,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종족과 종교를 따른다. 우리를 위해서 알라에게 어떤 것을 동료로 만드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오 친구들이여, 흩어진 다양한 안개 “신들”이 더 좋은가 아니면 유일하고 승리자 알라가 더 좋으냐? 너희들은 그를 버려두고, 자기들과 조상들이 부른 이름들 – 우상들에게만 예배하고 있다…..가장 올바른 종교는 바로 이것이다.” 라고 말한다. 무함맏 당시의 아랍인들과 조상들이 섬겼던 알라의 동료신들을 비난하고 있으며, 이슬람이 가장 좋은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 종교가 가장 올바른 이유는 알라에게 다른 동료가 없는 유일한 신이기 때문이며, 정통 아브라함의 종교를 따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함맏과 이슬람에게 있어서 자기의 아랍 조상들로부터 참된 이슬람 종교를 물려 받았다는 증거가 꾸란에는 전혀 없다.



무함맏에게 있어서 아랍인들은 조상 대대로 우상들을 섬긴 불신자들이었다. 무함맏이 자신의 선지자직의 정통성과 권위를 찾는 것은 자신의 조상들이 섬겼던 종교도 아니고, 결코 자신의 조상도 아닌 아브라함의 종교에 언제나 호소한다. 심지어 무함맏은 아브라함을 자기의 조상이라고 뻔뻔스럽게 주장한다. 무함맏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이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모세와 노아와 예수 등 모든 선지자들이 이슬람 종교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이라고 선동한다. 수라 42:13 알라가 노아에게 명령한 것과 같은 동일한 종교를 너희를 위해 제정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종교를 아브라함, 모세, 예수에게 명령했다고 한다. 즉 무함맏은 알라의 종교에 있어서 꾸준히 머물러 있다. 거기에는 어떠한 분할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한결같이 무함맏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자, 무함맏은 자신이 과거의 다른 선지자들과 전혀 다른 것이 없는 자라고 주장한다. 수라 46:9 “(오 무함맏) 말하라! ‘나는 선지자들 중에서 새롭운 자도, 첫번째도 아니다. (즉 나보다 이전에도 알라의 선지자들이 지나갔다. 왜 너희들은 나의 선지자들에게 놀라서 부정하려고 하느냐?) 나는 (미래에) 자신에게도 너희들에게도 무엇이 이루어질지를 모른다. 나는 단지 자신에게 계시된 것을 따르는 자이다. 나는 단지 분명한 경고자이다.



” 그러나 무함맏은 자기 자신이 다른 선지자들과 비교하여 전혀 새롭지 않다고 한 것, 즉 전혀 특별한 점이 없고, 첫번째도 아닐만큼 뛰어난 점도 없다고 소개한 것과는 달리, 신구약 성경의 모든 내용을 뒤엎어 놓을 만큼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을 저지를 존재가 되었다. 더군다나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의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자가 선지자들 중의 가장 위대한 지위를 찬탈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무함맏은 자신이 성경에 자신이 예언되어 있으며, 자신은 성경의 선지자들의 전통을 있는 자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무함맏은 선지자들과 예언이 중단되었던 역사를 이어주는 자라고 선포한다. 수라 5:19 “오 친근한 책이여, 자 우리의 사도 (무함맏)이 전에 선지자들보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우리에게 어떤 (천국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는 자와 어떤 (지옥의 고통을) 두렵게 하는 자가 오지 않았다.’ 라고 너희가 말하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종교 법령들을) 선포하려고 왔다. 자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와 (지옥을) 두렵게 하는 자인 자가 왔다.” 본문은 성경 계시의 종결성에 대한 무함맏의 무지를 드러낸다.



신구약 성경이 종결된 이후 상당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어떠한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무함맏은 바로 이러한 세월을 간격을 이어주는 최종적인 선지자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무함맏이 문맹이 아니었고, 계시록을 한 번만이라도 읽었다면, 이미 오래 전 성경에 선포된 무서운 저주를 자기에게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계 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 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19:19-21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그러나 이러한 무함맏의 제안이 유대-기독교인들에게 처음부터 한결같이 거절되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이다. 수라 3:65-71에서는 유대-기독교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했을 때, 그가 상당히 실망했음을 보여준다. 수라 3:65 “오 친근한 책, 왜 아브라함에 대하여 (그는 우리의 종교에 있었다 라고 하여) 논쟁하느냐! 결국엔 타우랕도, 인질도 그 후에 주어진 것이 분명하지 않으냐? 도대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여) 너희들이 아는 것들 (모세와 예수 선지자들에) 대하여 논쟁하고 있다. 이제 무엇 때문에 너희가 모르는 것 (아브라함이 어떤 종교에 있었는지)에 대하여 논쟁하려 하느냐? 알라는 알고 있고, 너희는 모른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아니다.



오히려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경우에 (알라에게) 복종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상숭배자들도 아니었다. 아브라함에게 더 가까이 있는 자는 그(의 길)을 따르는 자이다. 자 이 선지자 (무함맏)과 믿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알라는 겸손한 자들의 친구이다. 친근한 책 중 한 교파는 너희들을 (너희 참 종교로부터) 혼동시키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느끼지 못할 때에 단지 자기들만 혼동시킬 뿐이다. 오 친근한 책이여, 무엇 때문에 너희 자신들이 증거자 되어 알라의 (타우랕에 있는 무함맏이 참 선지자인 것에 대한) 구절들을 부정하느냐? 오 친근한 책이여, 무엇 때문에 너희 자신들이 알면서도 진리를 거짓과 혼합시키고 진리를 가두느냐?” 위의 본문은 대단히 우스꽝스러운 무함맏의 주장으로, 유대인들이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충분히 ‘미친 사람이 지껄이는 헛소리이다’ 라고 말했을 법한 말이었다.



아브라함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은 세상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인데, 아브라함이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아니었고,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 즉 무슬림이었다고 억지를 부린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장 가까이서 추종하는 자는 무함맏과 무슬림들이라고 주장한다. 도리어 무함맏은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모른다고 비판하였다. 결국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그를 거짓 선지자로 판단하고 배척하였다. 무함맏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좋아했다가 그들에게 실망하고 미워하게 되었던 것을 말해주는 또 다른 수라 구절이 있다.



수라 3:119 “오 (믿는 자들이여), 너희들은 그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은 너희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함맏에게 유대-기독교인들이 성경을 펴서 읽어주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무함맏에게 성경 자체를 펴서 읽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무함맏은 자기의 거짓을 그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성경의 진리를 거부했다. 도리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어 주면 문맹이었던 무함맏은 그것을 자기식으로 교묘하게 바꾸어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수라 3:78 “그들 중에는 (유대인들 중에는) 또 한 그룹이 있는데, 책에 (타우랕에) 있지 않은 것을 ‘책에서’ 라고 너희들이 생각하기 때문에, (타우랕) 책을 혀들을 감아서 (망치고 변질시켜서) 그들이 읽어준다. 그리고 알라의 앞에서 오지 않은 (자기의 말들을) ‘알라의 앞에서 온 것’ 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알라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무함맏은 구약과 신약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데, 유대-기독교인들이 읽어주는 성경 구절들이 기록된 그대로인지 꾸며서 읽은 것인지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무함맏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거부했을 때, 무함맏은 종교에 대해 언급하면서 기독교인들에게 “너의 종교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말라” 라고 함으로써 기독교를 경고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소위 “알라의 종교”인 이슬람과 유대인들의 종교와 기독교를 동일한 올바른 종교의 범주에 놓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들과 극히 일부분의 이스라엘 종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스라엘 민족들은 모두 이슬람 종교를 반대한 우상숭배자들이었다고 한결같이 비난하고 있다.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수라 4:171 “오 책이여, (예수를 신이라고 말함으로써) 너의 종교에 있는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마라! 알라 영광에 오직 진리의 말만 하라! 당연히 그 예수 그리스도 마리얌의 아들은 단지 알라의 선지자이고, 그의 마리얌에게 던진 말씀이고, 또한 그의 편에서 온 영일 뿐이다. 됐다. 알라와 그의 선지자들을 믿어라! ‘(주가) 셋 (즉 알라, 마리얌 그리고 이사 셋 모두 주님들이다)’ 라고 말하지 말라! ”



꾸란에서 무함맏은 종종 유대교와 기독교를 세상에서 권위 있는 종교들에 포함시키고 있고, 심지어는 기독교에서 이단시하고 있는 분파까지 무함맏에게 복종하는 경우에는 올바른 종교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수라 2:62 “당연히 믿는 자들이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과 (알라에게 믿음을 둔, 그러나 어떤 샤리아법을 준수하지 않는 종교적인 분파인) 사비교도들 (그들로부터) 어떤 자들 (전에 어떤 종교에 있었던 강한 믿음을 가지고, 유일한) 알라에게, 종말의 날을 믿는다면, 그리고 잘 준수한다면, 그들에게 창조주의 앞에서 상급이 있고, 그들을 위해서 위험과 염려가 없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종교는 최고의 권위가 있는, 가장 믿을 만한 종교이다’ 라고 자주 말한다.



실제 역사적인 사실에 있어서 아랍 족속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아브라함이 그들의 민족의 조상이고, 종교의 조상이라고 말한다(수라 2:124). 알라가 아브라함을 모든 민족들을 위한 이맘으로 만들었고, 그의 자손들도 이맘들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의 종교가 이슬람이었고, 그의 자녀들이 모두 무슬림이었다(수라 2:130-132)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함맏 당시의 책의 사람들, 즉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무함맏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수라 3:19). 그래서 수라 4:171; 5:77 “오 책의 사람들이여, 너희 종교의 한계를 넘어가지 말라!” 라고 말한다. 이 말은 각각의 종교에 서로의 침범해서는 안되는 한계가 있다는 말로, 이슬람 이외의 다른 종교들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꾸란에서 무함맏은 자주 이슬람이 가장 좋은 종교, 가장 올바른 종교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는 항상 한 종교를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여러 종교들을 상대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이러한 꾸란의 종교적인 사상 때문에, 오늘날 수 많은 무슬림들은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있소, 그런데 왜 당신들은 우리의 종교를 존중하지 않소?’ 라고 질문한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종교들을 존중한다.’ 라는 표현도 주저하지 않는다.



수라 5:19 “오 책의 사람들이여! 자 우리의 사도가 너희 책들 중에서 감추어진 많은 것을 너희들에게 분명히 한 경우에, 많은 것들을 거절한 때에 왔다. 너희에게 알라로부터 빛과 분명한 책이 왔다…. 알라는 모든 것들 위에 권세를 가지고 있다. 이 구절을 포함한 꾸란의 많은 구절에서 알라는 흔히 “우리”라는 1인칭 복수를 사용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인칭과 수가 꾸란 전권에서 일치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1인칭 단수로, 아주 드물게는 3인칭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인칭과 수에 관한 문제는 이후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유일한 신 알라에 관한 문제가 아랍 우상숭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것처럼, 유대인들-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그럼 유일신에 관한 무함맏과 유대인들-기독교인들 사이에 있었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사실 겉보기에는 유대인들의 유일신에 대한 사상이나, 무함맏의 유일신에 대한 사상은 큰 차이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유대인들이 무함맏을 믿을 수 없도록 만드는 이유는 선지자들에 대한 무함맏의 꾸며낸 이야기들과 자기들이 익숙히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 사이에 존재했던 첨예한 차이점 때문이었다.



이에 첨가하여 기독교인들의 반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구속사적인 중요성을 제거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무함맏은 당시의 아랍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던 우상 숭배자들에게도, 유대인들에게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반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수라 3:79에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무함맏이 소위 ‘선지자’라고 불렀던 예수께 대한 예배에 대해 무함맏에게 말했고, 무함맏은 자기가 새롭게 시작한 종교의 사상과 맞지 않기 때문에 거부했다.



“어떤 사람을 위해 알라가 그에게 책, 지혜 그리고 선지자직을 준 후에, 사람들에게 ‘알라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예배하라’ 라고 말하는 것은 허용된 것이 아니다.”

결국 무함맏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부정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정죄하고 저주하였으며, 전쟁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수라 29:46 “(오 겸손한<신자> 자들이여), 너희들은 책들을 가지고 단지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대화하라! 오직 그들 중에서 억압-폭력을 사용하는 자들과만 (예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꾸란도, 너희들에게 주어진 모세오경과 신약성경도 믿는다. 우리들의 신(일라)도, 너희들의 신(일라)도 하나이고, 우리들은 그에게만 순종한다.’ 라고 말하라.” 초기에 반대에 부딪혔을 당시의 이러한 조심스러운 태도는 차츰 노골적인 압력 행사로 악화되었다.



수라 9:29, 30 “알라와 말일을 믿지 않는, 알라와 그의 선지자가 부정하다고 한 것들을 부정하다고 알지 못하는, 진리 (즉 이슬람) 종교에 신뢰하지 않는 책들로 구성되는 어떤이들에게 반대하는 자들은 그들이 짓밟혀졌을 때 자기들 손으로 세금을 내기 전까지는 전쟁을 하라! 유대인들은 ‘우자이르가 알라의 아들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알라의 아들이다’ 라고 말한다. 이것은 (문서나 증거 없이) 그들의 입에 있는 말들이다.” 이 말은 분명히 논리적으로도 모순이 된다. 만일 유대-기독교의 하나님이 이슬람의 신과 동일하다면, 왜 이슬람은 억지로 유대-기독교인들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려고 그처럼 가혹한 정벌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수라 5:72-73에서 보는 것처럼, 무함맏과 꾸란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노골적으로 저주하고, 유대-기독교 역사를 송두리째 뒤엎고 왜곡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수라 5:72-73 “알라가 마리얌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들은 분명한 불신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 이스라엘이여, 나의 창조주와 너희 창조주가 되는 알라에게 종노릇하라!’ 라고 말했다. 당연히 누구든지 알라에게 쉬르크를 초래하면, 알라가 그에게 낙원을 부정하게<하람> 할 것이고, 그의 있을 곳은 지옥이 될 것이다.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어떤 돕는 자도 있지 않을 것이다. ‘알라는 셋 (즉 알라, 마리얌, 이사) 중의 하나이다’ 라고 하는 자들도 분명히 불신자들이다. 왜냐하면 유일한 알라 외에 어떤 신(일라)도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말하고 있는 말들을 멈추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들 중 불신자가 된 자들을 고통스러운 고난이 붙잡을 것이다.” 수라 3:67 “아브라함은 유대인도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였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무슬림이었고, 그들의 종교는 이슬람이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무함맏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모두 무슬림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는 알라의 참된 종교, 이슬람이었다고 우긴다. 이렇게 주장해야 되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함맏은 자신이 구약에 예언된 선지자라고 꾸란에서 여러 번 주장한다. 그는 자기가 선지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끊임 없이 주장한다. 즉 무함맏 자신과 이슬람 종교의 역사성에 치명적인 결핍이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수천년이 흐른 이후에, 즉 7세기 초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슬람 종교에는 역사적인 기반과 배경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인류의 역사 시작부터 변함없이 존재했던 종교를 자기의 종교로 삼고, 그 역사적 전통을 가로채는 방법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대교도, 기독교도 모두 사실은 이슬람이었다’ 라는 억지주장을 내세웠고, 아브라함의 생애를 팔레스타인 땅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옮겼으며, 모든 선지자들을 무슬림으로 만들었고, 자기는 가장 신실하게 이슬람 종교를 확증하는 최후의 선지자의 자리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이것에 반대하는 자들은 역사적 사실이야 어찌 되었든지 간에 모두 불신자들이며, 우상숭배자들로 정죄되어야 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한 후에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는 무슬림들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길들을 막아놓았다. (알라에게 복종을 의미하는) 이슬람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원하는 자는 누구나 알라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라 3:105 (종교적) 토론에 빠지는 사람처럼 되지 말라. 그들에게는 무서운 형벌이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무슬림들에게는 꾸란과 무함맏의 권위와 진실성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도 해서는 안된다. 무함맏은 이미 유대인들-그리스도인들과의 종교적 토론에서 자신의 거짓이 충분히 드러났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종교적인 토론을 할수록 자기에게 불리할 뿐만 아니라, 이후 자기를 따르던 무슬림들도 종교적 토론을 하게 되면 패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과는 어떤 대화도 용납치 않았고, 철저히 전쟁과 세금과 같은 압제를 통해서만 그들을 굴복시켜야 한다고 명령했던 것이다.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일관되게 협박과 공갈로 자기 종교에 붙어있도록 강요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이슬람교가 무슬림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다른 종교를 선택하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저주가 되었다. 수라 41:13 “그렇다. 만일 그들이 (즉 메카의 우상숭배자들이 이 상세한 설명 뒤에도 유일한 알라를 믿지 않고) 거절하면, 그 경우에는 말하라! ‘나는 너희들을 정확히 옫-야벳-과 사묻-샘- (종족들을 내려친) 번개과 같은 한 번개, 즉 멸망이 (임하는 것)을 경고한다.’”



한편 이슬람은 다른 종교처럼 분파로 나누어져서는 안된다고 명령한다(수라 6:159; 30:32). 하지만 이슬람 분파는 이후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는데, 나는 이 구절이 과연 무함맏 당시에 기록된 내용일까 의심해 본다. 이것은 꾸란을 편집했던 사람들이 삽입했던 구절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문맥과 정황상 그처럼 의심되는 꾸란의 내용들이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꾸란의 개경장인 첫번째 수라인 파티하를 통해 보듯이 언뜻보기에 무함맏의 모든 설교는 자비롭고 은혜로운 창조주, 유일한 알라만을 섬기고, 알라와 그가 보낸 사도 무함맏에게 복종하고, 알라와 무함맏의 종교인 이슬람을 따르라는 명령으로 함축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이슬람을 아름답게 포장한 가면과 같다. 꾸란의 다른 모든 내용은 파티하 수라장과 정반대의 알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함맏은 알라의 이름도, 모든 선지자들도, 천사들과 영적 존재들도, 신구약 성경들도, 과거의 모든 역사도 모두 자신의 새로운 종교를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 이용하고 있다.



천국은 종교적인 교훈이 가득찬 곳이다. 천국은 마땅히 고려해야 할 다른 수 많은 변수들을 무시해버리고 단지 이슬람 종교에 복종하는 자들만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너희 중에 지옥에 들어가지 않을 자는 아무도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그 어떠한 사람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모순된 저주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무슬림들은 죽은 후(혹은 심판 후) 모든 사람들이 일단 지옥에 들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옥에서 낙원에 가는 것은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사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세상에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지만, 인간 자신의 됨됨이나 내면의 세계, 혹은 과거의 생활과는 무관하게 지하드 즉 이슬람을 위해 싸우는 자들이 다치거나 죽으면 낙원에 간다고 감언이설로 전쟁에 초대한다. 이것은 오늘날의 무슬림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꾸란에서 무수히 찾아볼 수 있는 마호멭 자신의 설교였다.



꾸란의 전체적인 종교적 주제와 맥락은 다음과 같다. 즉 꾸란의 114장은 광범위한 삶의 모든 부분들을 다 다룬 것이 아니라 주로 이슬람 종교에 대해 다른 것인데, 그것을 요약한다면 대단히 단순한 공식이 성립한다. 무함맏이 새롭게 고안해 낸 이슬람 종교와 그의 새로운 유일신 알라와 그의 새로운 움마 공동체인 무슬림들과 그들의 대표자로서 가장 중요한 선지자 역할을 하고 있는 자신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와 같은 선지자들의 뒤를 따를 뿐만 아니라 그들을 확증하는 자이다. 꾸란에 나타나는 노아, 샘, 함, 야벳, 아브라함, 룻, 요셉, 모세 등과 같은 선지자들은 많은 수라들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했던 내용은 모두 한결같이 이슬람 종교를 전파했다. 또한 귀신들도 이슬람의 교리를 믿었고 다른 귀신들에게도 가르쳤다. 그 내용은 무함맏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들인데, ‘알라는 유일하고, 그에게는 어떠한 동료도 다른 신도 없다.



창조 이후 모든 사람들은 선지자들이 전파하는 이슬람에 관한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고 그들을 거짓말쟁이라고 했기 때문에 멸망을 당하였다. 그들은 나마즈(이슬람식 수라 기도문 외우기)를 완전하게 수행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종말의 날과 부활과 천국과 지옥에 대해 경고하였다.’ 선지자들이 증거했던 이슬람 종교는 알라의 종교이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종교이고, 이 종교를 믿고 따르며, 이 종교를 위해 싸우는 자는 낙원에 들어가고 이 종교를 믿고 따르지 않거나 이 종교를 배반하는 자들은 지옥에 들어가서 고통스러운 불속에서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꾸란은 모두 114 수라로 구성되어 전체 부피가 적지 않지만, 대부분 동일한 주제와 사건과 이야기들이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으로서, 실제에 내용에 있어서는 대단히 단순한 책에 불과하다. 무함맏이 가르쳤던 종교적인 의무들은 실제에 있어서 그렇게 대단한 내용들도, 진리들도 아니다.



꾸란에서 무함맏과 그의 신 알라가 가르치는 선행이나 도덕, 법에 관한 내용들과 그 의미들은 동서양 고금에 존재했던 일반적인 철학자들의 가르침과 비교했을 때에도 훨씬 수준이 낮은 것들에 불과하고, 우상숭배 종교인 불교의 가르침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형편 없는 것들에 불과하다. 꾸란의 거의 모든 내용, 특히 선지자들을 이용해가며 했던 말들은 모두 그가 꾸며낸 거짓말들이며, 그 나머지도 타락한 인간을 감화하여 변화시키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할 만한 특별한 점이 전혀 없기 때문에 무함맏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거짓말쟁이로 취급하였던 것은 타당한 판단이었다. 이렇게 조잡한 이야기들이 전지전능하시고, 지혜가 한이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기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배후에 역사하는 어두움의 영, 진리를 보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는 영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사실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무함맏이 말한 것처럼, 과연 성경은 무함맏의 확증을 필요로 하는가? 오늘날 무슬림들이 전혀 읽지 않고 있는 성경의 내용은 꾸란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질서정연함과 심오한 진리들과 하나님의 성품으로 충만하다. 우주와 인류 역사의 시작, 죄의 시작, 하나님의 구원 계획, 언약, 예언, 인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과 계시, 인류 역사의 성격, 인간의 삶의 기준이 되는 공의로운 율법, 다양하고 구체적인 인간의 내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들,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의 언약들과 예언들의 구체적인 성취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 약속된 성령을 받고 실제적으로 죄인이 변화되어 새로운 생명과 의롭고 거룩하며 성화되어 가는 삶을 체험하는 것, 무함맏이 결코 제공해 줄 수 없는 수 많은 선지자들의 믿음의 발자취와 예수님의 거룩한 삶의 모범 등 그 어떤 것을 무함맏과 그의 책 꾸란이 흉내낼 수 있는가?



참고로 무함맏에 대한 동시대 사람들의 비난들은 추가로 정리해 보았다.

거기에는 또한 탁월하게 신비한 과정을 통해 매듭(또는 옹이)에 숨결을 불어 넣는 마법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오늘날에도 이슬람 지역에서 마법을 행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수라 113 “(무함맏) 말하라! : ‘나는 아침 창조자로부터 (나에게) 자신이 창조한 것들의 악한 것들로부터, 어둠에 빠진 밤의 악한 것으로부터, 마디들에 호흡을 불어넣는 (마술사)들의 악한 것들로부터, 그리고 질투하는 질투자의 악한 것으로부터 피난처 주기를 구하며 기도 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무함맏이 아랍 이방인들의 악한 영적인 세계를 얼마나 두려워 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113 수라와 114 수라는 무함맏은 어떤 특정한 악한 진들(악령들)로부터 피할 피난처를 구하고 있다. 이 두 수라 뿐만 아니라 수라 7:200; 16:98; 41:36에서 무함맏은 무슬림들에게 사탄으로부터 피하도록, 수라 40:56에서는 꾸란에 대한 논쟁을 할 때, 사람으로부터 피하기 위하여, 수라 72:6에서는 진으로부터 피하기 위하여 알라에게 피난처를 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는 어떤 진들이 무슬림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수라 72:1-19에서 “진들 중 어떤 것이 꾸란을 듣고서 진리의 길로 들어섰고, 꾸란을 듣고 당장 믿었으며, 창조주에게 그 어떤 동료도 있지 않다고 말하여 무슬림이 되었다. … 당연히 우리는 인스도, 진도 알라의 영광에 항상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 ” 수라 72는 진들이 직접 1인칭이 되어 말하고 있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10-19절까지는 완전히 진들이 진들의 세계와 그들의 일들과 알라에게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무함맏은 그가 죽인 사람들의 영이 그의 꿈 속에 나타나 그를 괴롭혔다. 알라가 창조한 것이 그에게는 악하게 보였고, 이를 두려워했다. 무함맏 자신이 밤에 두려움으로 떨었다.



매듭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려는 여인들과 마술사를 두려워했다. 무함맏의 알라에 대한 두려움은 극에 달하였다는 사실을 위의 구절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무함맏에 대한 당시 아랍인들의 평가가 꾸란에 나타난다. 메카 사람들은 무함맏을 공포에 이끌려 부자연스럽게 행동했기 때문에 마주눈 (미친, 홀린)이라 했다(수라 37:36 – 미친자 시인; 44:14 – 미친 자). 수라 52:29 “됐다. (오 무함맏), 너는 (사람들에게 꾸란 구절들을 가지고) 가르치라! 왜냐하면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점쟁이도, 미친 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은) ‘한 시인이다. 우리들은 그에게 재앙이 미치기를 기다린다’ 라고 한다.” 심지어는 무함맏은 자신이 미친 자가 아니라는 것을 맹세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수라 68:2 “연필과 (그와 함께 천사들이) 쓰는 기록들에 맹세하건데, (오 무함맏)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미친 것이 아니다.” 수라 81장은 무함맏이 메카에서 초기에 암송했던 수라로서 왜 메카인들이 그를 미친 시인이라고 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암시를 주고 있다. 수라 81:1-25 “해가 둘둘 말려졌을 때, 별들도 (자기 하늘들에서) 흘러내릴 때, 산들도 (자기 자리들에서 옮겨져) 돌아다닐 때, (뱃 속의 새끼가) 열 달 된 임심한 낙타들도 자유롭게 보내졌을 때, 맹수들도 (한 곳에) 모였을 때, 바다들이 (화덕처럼) 불어졌을 때 (그리고 물 대신에 불로 채워졌을 때), 영혼들이 (다시 육체들에) 짝지워졌을 때, 산채로 매장된 (각각의) 소녀에게 어떤 죄 때문에 죽었는지를 물었을 때, (행위를 기록한 책) 페이지가 열려졌을 때, 하늘이 (땅 위에서) 벗겨졌을 때, 지옥이 (불신자들을 위해) 타올라 흐를 때, 천국이 (경건한 자들에게) 가까워졌을 때, (바로 그 날에 각각의) 영혼이 (바로 그 날을 위해) 준비하여 온 것을 (즉 모든 선악을 행한 것을) 아노라! 충분하다.



나는 (밤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 자, (밤들도) 빨리 지나 (자기 ‘둥지들’ - 성벽들에) 숨어있는 자(별)들에게, 자기 어두움으로 오가는 저녁에게, 그리고 밝고 있는 새벽에 맹세를 하노라! 의심할나위 없이 이 (꾸란은) 한 위대하고, 힘있고, 아르쉬의 주인 (되는 알라)의 견해로서 적절한 시간과 장소가 있는, 그곳에서 (즉 하늘에서 천사들 쪽에서) 복종하는 자, 신실한 사도의 (즉 자브러일 천사의 알라 편에서 온) 말씀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주인인 (무함맏은) 미치지 않았다. 참으로 그 (자브러일을) 열려진 지평선에서 보았다.



이 (무함맏은) 출저를 모르는 계시를 탐내는 자도 아니다. (그는 알라 편에서 자기에게 온 계시들을 망치지 않고, 완전한 형태로 너희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이 (꾸란은) 쫓겨난 사탄의 말이 아니다.” 본문에서 사람들에게 진리의 길을 가르쳐 주고, 생명을 주는 어떤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대신 의미없이 중얼거렸던 시와 의미 없는 맹세와 무함맏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말과, 그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출처도 모르는 계시를 탐욕스럽게 갈망하는 자도 아니고, 꾸란이 사탄으로부터 오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말들만 있을 뿐이다.



그의 이웃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사히르(마술사)라고 했다(수라 10:2 “불신자들은 ‘참으로, 이 (즉 무함맏은) 대단한 마술사이다’ 라고 한다”; 수라 15:15 “만일 우리-알라-가 그들에게 하늘에서 한 문을 열어 놓는다면, 그리고 거기에서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한다면, 그래도 당연히 그들-아랍인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우리들의 눈들을 묶어 놓았다. 우리들은 마법에 걸린 사람들이다’ 라고 할 것이다.” ; 수라 38:4 “(메카 우상숭배자들이) 그들에게 자기들로부터 (즉 인간 족속으로부터) 된 한 경고자 – 선지자가 나온 것에 놀랐고, 그 불신자들이 말하기를, ‘이는 한 거짓 마법사이다. (그래서) 신들을 한 신으로 만들어 버렸느냐?



참으로 이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라고 했다.”). 수라 21:3-6 “당연히 그것을 조롱하여, 심령들이 전적으로 무지해진 상황에서 듣는다. 그리고 포악스러운 불신자들은 ‘이 자 (즉 무함맏)은 너희와 비슷한 한 인간일 뿐이다. 너희가 보고 있는 상태에서 마술에 (속으려고) 하느냐?’ (라고 하여) 서로 속삭인다. (그 때 무함맏이) 말하기를 ‘나의 창조주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말을 안다. 그는 듣는 자이며, 아는 자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함맏이 계시라고 주장하는 말들이) 조리없는 꿈들이다. (그 말들을) 아마도 그 자신이 지어내었다.



아마도 그는 한 시인이다. 그렇다. 그도 전에 보내진 선지자들이 (초래시킨) 것과 같은 어떤 이적을 초래하게 하라!” 다른 사람들은 마슈르(마법에 걸린), 또는 미친자라고 했다(수라 17:47, 48 “우리는 그들이 너에게 (즉 너의 암송하는 것에) 귀를 기울였을 때 무엇 때문에 귀를 기울이는지를, 그리고 이 핍박자들이 서로 속삭이며, ‘분명히 너희들은 마술에 걸린 자들이다. 정신이 나간 사람들을 따르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들을 아주 잘 알고 있노라. (오 무함맏) 그들은 네가 참으로 (마법에 걸린, 미친 자, 시인이라 하여) 어떤 예들을 드는 자들을, 됐다,



길을 잃고 (참) 길을 찾지 못하는 자들을 보라!” 다음 구절은 무함맏의 표현 자체에서 왜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그를 마술사, 미친 자라고 했는지를 보여준다. 수라 17:50-51 “말하라! ‘너희들은 돌이나 쇠붙이가 되라! 또는 너희 마음들에 (생명을 상상하는 것은) 아주 힘든 다른 어떤 존재가 되라! (모든 상태에서 알라가 너희들을 부활시킬 것이다)’ 아직 그들은 ‘우리들을 누가 부활시킬 것이냐?’ 라고 말한다. ……” 수라 25:9; 44:13). 수라 18:40-41 “분명히 나의 창조주가 나에게 너의 동산-또는 과수원보다 더 좋은 (한 동산을) 줄 것이다. (너의 동산에는) 하늘에서 벼락들을 보낼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매우 부드러운 땅으로 변화될 것이다.



또는 그것의 물이 (땅 밑으로) 흡수되어 너는 그것을 찾아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 사람들은 카힌(점쟁이)라고 불렀다(수라 52:29; 69:38-42 “충분하다. 나는 너희들이 보는 것들에도, 너희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에도 멩세를 한다. 이 (꾸란은) 의심 없이 위대한 선지자의 (알라 왕궁에서 오게 된) 말들이다! 그는 어떤 시인의 말이 아니다! 너희들은 (그 꾸란이 알라의 말인 것을) 아주 적은 사람만 믿는다! 그리고 어떤 점쟁이의 말도 아니다. 너희들은 아주 적은 사람만 교훈을 받아들인다.!” ). 또한 진의 인도를 받아 영감있고 리듬있는 시를 반복적으로 암송했기 때문에 샤이르(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수라 37:36; 52:30; 69:42).

무함맏은 자기를 반대하는 자들을 극도로 미워하였으며, 결코 너그럽고 온유하게 용서해 주는 법이 없었다.



그를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그의 마음 속에 항상 얼마나 악하고 저주스러운 가득차 생각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수라 구절들이 수 없이 많다.



위와 같은 무함맏의 많은 헛된 맹세와 변명들과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시기와 미움과 저주로 가득찬 꾸란이 어떻게 죄로 인해 생명을 잃고 방황하는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변화시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할 수 있겠는가?

추종자들이 무함맏에게 가브리엘과 만났던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자 그는 종 울리는 소리와 금속이 쿵쿵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가 계시를 받는 동안 추종자들은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거나 붉어졌으며, 그의 입술이 조용히 움직이고, 가끔은 무의식 상태에 있었음을 보았다. 이처럼 무함맏은 계시를 받는 동안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무엇이 홀린 듯한 사람과 같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를 두려워했다.



이 밖에도 무함맏에 대해 무함맏 당시의 아랍인들이 비난했던 단어들은 “거짓말쟁이”, “전설을 말하는 자” 등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비난은 최근에 우리가 일부러 꾸며낸 것도, 우리가 이슬람을 비난하기 위해서 하는 말도 아니다. 꾸란 자체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꾸란 전체에 걸쳐 무함맏의 말들은 대체적으로 과장이 너무 심하고, 사소한 일에도 천국과 지옥을 운운할 정도로 언어에 경솔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무함맏은 새로운 종교 이슬람의 고안자이다.

이슬람 종교는 무함맏 이전에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다. AD 600년 이전에 ‘알라’, ‘이슬람’, ‘무슬림’ 이러한 단어들은 세상 그 어디에도, 그 어떤 문서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슬람 종교는 하심 계통의 꾸라이쉬 부족의 아둡라의 아들 무함맏에 의해 아라비아의 메카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무함맏은 40세가 되었을 때, 가브리엘이라고 주장하는 천사에 의해 알라에 관한 계시가 아닌, 알라의 뜻에 관한 계시를 시리즈로 받았다. 무함맏은 아담과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세와 심지어는 예수까지 참 무슬림이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무지한 자힐리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성경의 선지자들을 믿고 따르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자기의 종교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에게 유일신 여호와가 있었다면, 무슬림들에게는 무함맏에 의해 유일신이 되어버린 알라가 있다.



무슬림이란 단어는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을 모방하여 ‘이슬람과 무슬림’, 즉 ‘복종과 복종하는 자’의 구조를 만든 것이다. 기독교에는 그리스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무함맏은 자기가 스스로 고안해 낸 이슬람 종교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신앙의 대상이라면, 무슬림들의 신앙의 대상은 알라이고, 이 알라는 그 이전의 그 어떤 신보다도 위대한 위치를 찬탈해 버렸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 이삭, 다윗의 후손으로 왔다면, 자신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혈통으로 왔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한 아브라함 – 이스마엘 – 무함맏 신화를 만들어 냈다. 유대인들에게는 토우랏과 자부르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경이, 이제 무슬림들에게는 꾸란과 하디스가 경전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종교의 기준이 되었으며, 세계관이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닮으려 한다면, 무슬림들은 무함맏을 모방하여 닮으려 한다. 사람들의 삶은 그들이 따르는 자를 닮게 마련이고, 실제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교회라면, 무슬림들을 위한 공동체는 움마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안에 있는 모든 영역을 무함맏과 그의 종교 이슬람은 모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꾸란에서도 충분히 간파할 수 있다. 수라 2:135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이 되라! 올바른 교훈을 찾자!’ 라고 그들은 말한다. (즉 유대인들은 유대인이 되라! 말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라! 라고 말한다. 너는 말하라! 오 무함맏이여!) 오직 우리는 참 길에서 떠나지 않은 자, 우상숭배자들이 되지 않은 아브라함의 종족에 – 그의 종교에 (따르고 있는 자들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상 무함맏은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 천재가 아니었다. 무함맏은 거짓말쟁이였다. 그가 기록한 꾸란의 거의 대부분의 내용들이 거짓말들로 가득차 있다. 무함맏은 수라 2:256에서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고 말한다. “종교에 강요하여 들어가게 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사탄과 무함맏은 무슬림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그 길을 막고 있다. 무슬림들은 이슬람과 꾸란에 대해 그 어떠한 질문도 의문도 가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무함맏의 거짓말들에 속고 있는 무슬림들에게 진리의 빛으로 비추어 주고, 어두움 가운데서 어두움의 영이 이끄는대로 무력하게 이끌려 가는 불쌍한 무슬림들을 구원해 내야 한다.







참고로, 위의 본문에서 어느 곳은 마호멭으로, 어느 곳은 무함맏으로 다르게 불려지고 있는데, 그것은 최근 한국에 들어와 한국식으로 마호멭으로 부르는 것을 내가 살았던 곳에서는 무함맏으로 부르고 있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모두 무함맏으로 통일했다. 또 위의 꾸란의 내용들을 한국의 꾸란 번역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많은 차이점을 발견하게 될텐데, 사실 한국어 번역본은 원문의 내용을 한국인과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많은 내용을 고쳐 썼기 때문에 서로 참고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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