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0일 개막을 앞두고 있는 WCC 부산 총회는 이미 절반의 실패를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지난 4년간 보수와 진보의 극명한 갈등과 대립은 총회를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까지 한 발짝도 좁히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WCC 부산 총회를 유치한 측에서는 한국교회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보수진영 설득에 실패하고, 분열과 갈등만을 가중시킨 셈이다. 더욱이 최근 발생한 명성교회 주일예배 중에 벌어진 인분 투척사건은 아연실색케 하는 일이었다. 그것도 통합측 장로에 의해 발생했고, WCC 부산총회 개최를 저지하기 위하여 32일째 금식 중이었다는 사실은 한 개인의 행동으로만 생각하고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1.13 공동선언문' 폐기처분, WCC 총회 저지운동 가열

2009년 9월 WCC 총회 개최지가 한국 부산(벡스코)으로 확정되자 NCCK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종교 올림픽이라면서 한국교회 전체의 축제로 몰아갔다. 그러나 장로교 각 보수 교단에서는 그 해 가을 총회부터 WCC를 비난하는 움직임이 일기시작하면서 저항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거세어졌다. 장로교 보수교단의 장자교단인 예장 합동에서는 당시 총회장인 서정배 목사가 담화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WCC 반대 의사를 밝혔고, 한국복음주의 역사신학회 등에서는 ‘WCC 관련 학술논문 발표회'를 가졌는가하면, 미래목회포럼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었다.

청교도영성훈련원과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보수교단협의회, 예장연 등 각종 기독교 기관단체에서 WCC총회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이런와중에 올 초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에서는 한국교회의 연합을 위해 중대한 용단을 내린다. 이름하여 1.13 공동선언문이다. 한기총 주도하에, NCCK(총무 김영주 목사 ), WCC 총회한국준비위원회(상임위원장 김삼환 목사), 세계복음연맹(WEA) 총회준비위원회(위원장 길자연 목사) 등 4개 단체가 1월 13일 서울 명성교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동선언문을 전격 발표하여, 교계뿐 아니라 사회의 이목을 집중 시킨 사건이다.

당시 선언문을 통해 4개 단체는 “WCC 총회 개최를 앞두고 한국교회 안에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종교다원주의 배격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연애 등 반대 ▲개종전도 금지주의 반대 ▲성경 66권의 무오성 천명 등 4개 원칙에 대한 선언을 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 NCCK 김영주 총무는 자신이 서명한 공동선언문의 파기를 선언하고, WCC 10차 총회 한국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 직을 사임했다가 몇 개월 후 복귀한다. 당시 김영주 총무는 “한국교회 전체가 환영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이 앞서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바 있으나, 넘지 말아야 할 범위를 넘어 도저히 합의할 수없는 내용이 있기에, 이 문서에 서명한 것을 취소하며, 공동선언문이 파기되었음을 선언한다”고 했다.

교계 기자들 뿐 아니라 일반 언론의 기자들까지 모인 자리에서 서명날인하고 승리를 다짐했던 1.13 공동선언문을 결국 NCCK에 의해 해프닝으로 끝나버리게 됐다.

이후 보수진영의 반대운동은 더욱 거세졌으며, 한기총은 집중적으로 이 일에 나섰다. 한기총은 WCC 문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책자와 팜플렛, 5분 분량의 동영상을 제작 배포했고, WCC 대책 학술세미나와 심포지엄, WCC 반대 집회를 개최했다. 지난 5월 11일(토)에는 부산역 광장에서 WCC총회 반대 부산집회를 성황리에 개최했고, 9월 2일부터는 WCC 부산총회가 열리는 10월 말까지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이단 WCC의 실체’를 주제로 연속 공개강좌를 진행하는 등 지속적이고 꾸준하게, 그리고 강도높게 저지운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약 30개 기독언론사들로 구성된 ‘WCC 제10차 총회 공동취재단’이 한국교회 주요 교단·단체·신학교 대표들에게 “WCC 총회 개최”와 관련하여 공개질의를 하기도 했다. 이 결과 응답을 보내온 이들 122명 중 WCC에 대해 공식적으로 찬성(지지) 의사를 밝힌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장 합동을 비롯해 고신, 고려, 합신, 대신, 예성, 기침 등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은 WCC 총회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반면, WCC를 지지하고 있는 예장 통합과 기성 등은 아무런 의사도 표명하지 않았다.

침신대 배국원 총장은 WCC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한기총과 NCCK 등이 발표했던 1.13공동선언문에 대해서는 “구원받은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동의하고 수호해야 될 고백이라고 생각된다”며 “자신도 종교다원주의,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연애, 개종전도금지, 성경의 절대무오성에 대한 공동선언문의 고백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힌바 있다.

예장 통합측 증경총회장이자 한기총 증경회장인 이광선 목사는 공동선언문에 대해 “신학적으로 지지한다”는 응답을 보내왔다. 다만 이 목사는 ‘WCC 철회운동에는 동참할 의사가 없으며, WCC 총회를 지켜보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공동취재단은 공개질의를 통해 ‘교계 지도자들 사이에서 WCC의 실체에 대한 인식에 시각차가 커서, 이에 대한 대화와 토론이 필요해 보인다’면서, ‘한국교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WCC 반대측은 대체로 “WCC가 공산주의, 동성애, 일부다처제, 종교다원주의 및 종교혼합주의 등을 지지 내지 허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WCC 찬성측은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기 때문에 신학적 논쟁이 더욱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린바 있다. 


종교 올림픽, 역사의 재현 우려

한국교회의 저항에 NCCK와 WCC한국준비위원회측은 해결책 마련을 위해 고심했으나, 일주일 남짓 남은 현 시점에서 결과는 참담하다.

김삼환 목사는 WCC 부산총회와 관련하여 “우리나라가 민주화 및 경제발전에 이어 영적으로 성장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리라 확신한다”고 말한 바 있고, “총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뒤에는 한국사회와 한국교회가 모든 면에서 성숙하고 발전하는 큰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쉽지않은 상황이다.

한기총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는 “한국교회가 종교다원주의와 동성애를 인정하는 WCC를 용납한다면 교회 성장이 둔화된 ‘제2의 유럽’ 처럼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직전 대표회장 길자연 목사는 “WCC는 말씀 없는 허구에 지나지 않고 자칫 한국교회를 무너뜨릴 수 있다. 한국교회는 오직 유일신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기총 WCC대책위원장 전광훈 목사는 "WCC는 세계적인 교회연합기구이며, 세계 모든 교회는 하나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예수를 구세주로, 성령으로 잉태됨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포진되어 있다"면서,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을 인정하지 않는 단체들이, 부산에서 종교올림픽이라며 총회를 연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열변을 토한적이 있다. 그러면서 WCC 총회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총동원되어 노력 봉사할 것을 촉구하며, 인천의 영종도 공항부터 서울까지, 그리고 WCC가 열리는 부산에서 "예수님은 다시 돌아오신다. 예수님은 재림한다"는 등의 피켓을 들고 전세계에 주님을 선포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54년 전인 1959년 WCC 가입문제로 합동과 통합이 분열되고, 기성이 예성으로 나뉘는 등 극심한 혼란을 겪은 우리의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그 역사가 지금 재현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굳이 세계연합기구의 총회를 한국에 유치하면서 내부적인 혼란을 야기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WCC 총회는 시작도 전에 절반의 실패를 안고 가는 격이라는 게 교계 안팎의 시선이다. 총회 후, 한국땅에 어떤 결과물을 남길지 또 그에따른 책임은 누가질지... 한숨소리가 크기만하다.